악마 카사노-악동 발로텔리, 이탈리아 8강 견인

 

 

2라운드까지 조 최하위를 달리던 팀(그리스)은 8강에 오르고, 선두를 달리던 팀(러시아)은 탈락의 고배를 마셨던 A조의 상황이 비슷하게 재현됐다. 탈락 위기에 처해있던 아주리 군단 이탈리아가 19일 새벽 끝난 C조 예선 3차전에서 아일랜드를 2-0으로 잡고 조2위로 8강에 올랐다.

 

무조건 승리가 필요했다. 2무를 기록하고 있는 이탈리아가 나란히 1승1무 승점 4점인 상황에서 맞붙는 스페인과 크로아티아 중 한 팀을 제치고 8강행 티켓을 거머쥐는 경우의 수의 기본은 승점 5점을 만드는 수밖에 없었다. 이긴 뒤, 다른 매치업의 승패가 갈리면 간단했다.

 

하지만 스페인과 크로아티아가 사이좋게 손잡고 나가자는 마음가짐으로 비겼을 때가 문제였다. 무득점 무승부로 끝나면 이탈리아는 1-0으로만 승리해도 진출이 가능했다. 그러나 1-1 이상, 골이 나온 상황에서 비기면 피곤했다. 스페인은 아일랜드에게 4-0으로, 크로아티아는 3-1로 승리했기에 이탈리아로서는 다득점에 대한 부담이 있었다. 대승이 필요했다. 2-0으로 승리하고도 떨어지는 억울한 일이 발생할 수도 있었다.

 

갈 길이 먼데 경기 초반은 애를 먹었다. 24년 만에 나선 유럽선수권의 마지막을 즐기려는 아일랜드의 움직임이 경쾌했던 까닭이다. 부담 없는 공격진은 과감한 움직임으로 이탈리아 선수들의 발을 묶었고 이탈리아 출신의 백전노장 트라파토니 감독의 팀답게 수비라인은 ‘영연방산 빗장’다웠다. 여느 팀 같으면 당황했을 상황이다. 하지만 이탈리아 선수들의 수준은 높았고, 역시 컨트롤타워 피를로는 훌륭한 사령관이었다.

 

비단 이번 대회만의 일은 아니지만, 특히 이번 대회에서 더더욱 믿고 의지하는 피를로가 침착하게 경기를 조율하던 이탈리아는 시나브로 경기 주도권을 가져갔고, 전반 중반 이후로는 자신들의 페이스로 만들었다. 그러던 전반 35분 ‘악마의 재능’ 카사노가 급한 불을 껐다. 피를로의 정교한 왼쪽 코너킥을 카사노가 가까운 포스트로 쇄도하며 헤딩으로 잘라내면서 귀중한 선취골을 뽑아낸 것이다. 중요한 순간에 터진 카사노의 대회 첫 골이었고, 역시 피를로의 킥은 일품이었다. 카사노 앞에서 시선을 끌어준 바르잘리의 보이지 않는 움직임도 좋았다.

 

스페인-크로아티아는 전반을 0-0으로 마쳤다. 따라서 전반전이 끝난 상황에서의 C조 순위는 이탈리아-스페인-크로아티아-아일랜드 순이었다. 물론 나머지 45분에 많은 것이 바뀔 수 있는 축구지만, 스페인-크로아티아전의 서로 긴장하고 있는 팽팽함을 생각했을 때 1-1도 쉽지 않고 따라서 프란델리 감독으로서는 이대로 끝나면 8강에 갈 수 있다는 판단이 섰을 것이다.

 

후반 16분 선제골을 포함해 나쁘지 않은 몸놀림을 보이던 카사노를 빼고 디아만티를 넣은 것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미드필더니까 단순히 수비를 강화하겠다는 뜻은 아니다. 디아만티는 공격적인 성향의 선수다. 창의적인 패스력을 지닌 플레이메이커 유형이다. 요컨대, 카사노보다는 수비가담이 나으나 공격적인 재능도 부족하지 않은 디아만티를 통해 실점 않은 채 추가골을 노릴 수 있는 카드를 투입한 것으로 해석하는 게 낫다.

 

이탈리아 선수들 머리 속에서도 막으면 된다는 생각이 찾아왔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다소 수세적인 장면이 많이 나왔던 후반이다. 물론 유종의 미를 거두고 싶은 아일랜드 선수들의 의지도 반영됐던 결과다. 하지만 언제 어느 때고 쉽게 열 수 있는 이탈리아의 문이 아니다. 카테나치오라는 수식은 괜히 얻어진 전리품이 아니다.

 

아일랜드는 두들기다 제풀에 지치면서 시간이 흐를수록 세기가 약해졌다. 엎친 데 덮쳐 앤드류스가 종료 2분을 남기고 퇴장을 당했다. 그리고 이탈리아는, 종료 직전 악동 발로텔리가 멋진 시저스킥으로 두 번째 골을 터뜨리면서 승부의 쐐기를 박았다. 그 무렵, 스페인도 종료 3분을 남기고 골을 터뜨렸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리고 그대로 끝났다. 결국 C조에서 8강 진출의 티켓을 잡은 팀은 스페인과 이탈리아였다. 악마의 재능 카사노와 악동 발로텔리가 아주리를 구했다.